내 머리통 반만 하던 토마토가 과숙이 되어 터지거나, 울퉁불퉁 못생긴 녀석들, 때로는 덜 익어서 퍼렇고 돌덩이 같던 것들이 플라스틱 소쿠리에 가득 담겨 있으면 그 곁을 파리가 윙윙 종일토록 맴돌았다. 상품가치가 떨어진 못생긴 과일들은 그렇게 수북 담겨서 대청마루에 줄지어 있다. 수박, 참외, 토마토 농사를 하던 외가에서 보냈던 여름방학 기억 중의 일부이다.

문명이라고는 문짝 달린 흑백티비와 다 낡은 형광등. 그나마도 그 시절의 티비는 낮엔 나오지도 않았다. 터지고 못생긴 과일들은 맛이 없고 싫어 대청마루에 멍하니 앉아 다리를 간들간들 하고 있다가 바쁜 외할머니를 귀찮게 조르곤 한다. 그러면 어느날엔가는 간판도 없는 어느 집으로 들어가 과자를 내오곤 하셨다. 읍내로 가지 않으면 점빵이란 게 없으니, 누군가의 집은 담배와 주전부리를 사다놓고 동네 사람들에게 판다. 그런게 아니면 할머니는 벽장 안 접시 위에 놓인 옥춘이나 박하사탕을 하나씩 주신다던가… 찐득하게 녹아내려서 비닐과 들러붙은 박하사탕이나마 귀하게 먹어야 하는 시골의 여름 방학이었다. (사탕이 나오는 벽장의 정체는 취학 전에 죽은 어린 이모, 삼촌을 위한 사당벽장인줄 나중에야 알았다.)

대청마루에서 다리를 간들거리던 초딩도 이제는 쉰이 더 가까운 나이가 돼 버렸다. 외할머니가 떠나신지도 오래되어 내 전생에 만났던 분이셨나 생각도 든다. 2022년의 하루가 또 흘러간다. 아침에 현관문을 여니 새벽에 다녀간 로켓 프레시 상자가 와 있다. 간만에 구입한 토마토도 있다. 과숙되어 터지고 못생겼던 그런 것이 아니라.. 예쁘게 생긴 완숙 토마토다.

씻어서 그대로 한 입 물었다. 그 토마토가 딱 이 맛이었나? 아니, 좀 더 밍밍했던 것도 같으나 기억은 불붙은 솜처럼 일어난다. 나는 잠시동안 외할머니와 1985년의 여름을 생각하였다.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