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2010년 2월 14일   |   by 아라

오랜만에 맞이하는 소란스러운 아침이었다.
내일이면 여름방학이 시작된다는 것에 모두들 들떠 있었기때문에
향이와 나는 그런 분위기를 피해 수돗가 옆의 한적한 계단에 앉아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향이와 나 사이에 아침 햇볕이 내리쬔다.

” 한여름의 부산이라니 바다도 있고, 좋겠다. “
” 별로 그렇지도 않아. “

향이가 애써 말을 건냈지만, 우리는 이내 조용해졌다.
한참을 또 그렇게 잠자코있던 향이가 어? 하고 정적을 깨뜨렸다.
촛점없이 흐려진 내 시야로 녀석의 모습이 보인다.
저 멀리에서부터 농구공을 튀기며 이 쪽으로 오는 모습이.

” 저 애, 남자애 아냐? 왜 우리학교에 있지? “
” 무슨 소리야? 쟤 우리반이야. “
” 에-? 거짓말! 한 번도 본적이 없는데? “

왜 항상 저렇게 짧은 머리를 하고 다니는 걸까?
저렇게 눈에 띄는 녀석을 한 학기내내 한 번도 본적이 없다는 쪽이 오히려 거짓말 같았다.
뭐.. 녀석은 심지어 선배언니들에게도 남학생으로 오해를 사곤하니까, 대단한 일이 아닐지도…

” 나 쟤랑 같은 학교 졸업했다구. “
” 진짜? 우와. 짱이다…. 완전 남자애 같애! “
” 쉿. 야.. 들리겠다. “

볼이 빨갛게 상기된 녀석은 아무 것도 모른채 향이와 내 옆을 지나쳤다.
같은 반이라고는 해도 큰 키에다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때문인지
말 한 마디 걸어본 적이 없다. 그저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 뿐.
녀석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나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이제 들어가야겠어. 선생님 오실 시간이야. “
” 아.. 아쉽네. 건강하게 잘 지내. “
” 고마워. 너도 잘 지내고. “

향이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향이의 따뜻한 온기가 바람과 함께 금방 사라진다.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서 재빨리 뒤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웃는 얼굴로 인사하기로 마음먹는다.
향이가 복도끝까지가서 안 보이게 될때까지 한없이 바이바이를 하며.

” 너. “

향이가 사라지는 쪽을 한참 바라보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복도벽에 기대서 있던 그 녀석.
언제부터 이렇게 노려보고 있었던건지,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왠지 나쁜 짓을 들킨 것 같은 당황스러움에 허둥대고 만다.

” 아.. 그.. 그게 너를 놀리고 있던게 아닌데… 다른 반 친구가.. 너를 잘 몰라서… “
” 못 보겠네. 이제. “
” 응? “

녀석은 잠깐 뜸을 들이며 말을 끊었다.
향이와 있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녀석과는 잠깐의 침묵도 참기 힘들다.

” 전학 간다며? “
” 아.. 응. “

전학간다는 건 우리반 아이들 모두 한 달전부터 알던거잖아. 새삼스럽기는.
귓속이 우웅하며 울리고, TV속의 인물과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는 녀석의 모습 또한 어색하다.

” 우리, 같은 학교 졸업했었지? “
” 으응… “
” 친해지고 싶었는데… “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열심히 머릿속에서 기억을 되짚어보지만
둘이서 이야기를 나눈 적도, 특별한 추억도 없다.

” 이거. “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내미는 녀석의 새하얀 손.
우물쭈물 하는 내 손에 직접 쥐어준다.

” 편지, 써줄거지? “
” …. “

끄덕끄덕.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거의 속삭이듯 기다릴게 하고는 교실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열네살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 (….) 고치고 또 고쳐도 삐끕. @A-R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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