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

2010년 8월 15일   |   by 아라

반장이 특별활동부 이름을 호명하자,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이 손을 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 특별활동으로 가입하고 싶었던 시사연구부는
가입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 각 반마다 2인이기때문에
누군가 한 사람은 다른 특별활동부에 가입을 해야했다.
단짝이던 두 사람은 내가 빠져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러던 중에 Y가 제안했다. 그럼,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자.라고.

그렇게해서 나의 도서부 생활이 결정되었다.
단짝인 그애들은 손을 맞잡고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지만,
이겼다 한들 이 무덤덤함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큰 기대가 없었던 탓에 실망도 적었다.

* * *

길게만 느껴졌던 그 해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다가오는 즈음이었다.
며칠을 벼렀던 이야기를 오늘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우물쭈물하던 나는 독서실 입구에 도착해서야
운동화를 고쳐신는 시늉을하며 Y에게 말을 꺼냈다.

– 내일부터는 그냥 동네 독서실에 갈래.
– 왜, 갑자기?
– 집까지 너무 멀어서 힘들어.
– 내가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면 안돼?
– 날도 추운데 뭐하러. 난 그게 편할 것 같아.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이 된다.
그 표정을 모른채하고 얼어붙은 계단을 앞장서 내려간다.

– 특별활동부 결정할 때, 수정이가 졌으면 좋았었겠다는 생각. 가끔 한다.
  그랬담 너랑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을텐데.
  이제 2학년 되면 너는 이과반 갈테고, 같이 있을 시간도 별로 없잖아.

등뒤에서 들리는 울음이 묻은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얼굴에 반사된 겨울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창백한 얼굴이 아픈건지 슬픈건지 알 수가 없다.
손을 내밀어서 계단위에 서 있던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 시간이 흐른다는건 재밌네. 뭐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어.
– 뭐가?
– 너 그 날 수정이랑 손잡고 좋아하면서 다행이라 그랬었어.
– 그 때는 너랑 친해질지 몰랐으니까.
– 내일도 우리가 이렇게 친할까?
– 야, 그게 무슨 소리야. 무서운 말 하지마.

* * *

우리에게는 내일을 보는 눈이 없다.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변하는 것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어제의 일이 지워지거나 바뀌지는 않을텐데
이상하게도 흘러가버린 시간에 대해서는 냉담하다.
그런식으로 그녀는 내 시간에서도 멀어져서 완전히 떠나갔다.

스스로는 예측 가능한 변화에 대해서 마음의 준비를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된 후에도 쉬운 일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나빴던 경험으로 미루어 다가올 나쁜 일을 짐작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며
불행한 현재를 사는 바보 같은 나.

– 그런 우울들이 이어져서 인생이 되어가다. @A-RA.COM –

Recent Comments

  1. miro

    응답
    2010년 8월 19일 @ 7:44 오전

    경험을 통해 배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헤메는건 변함이 없죠.
    아라님이 보내주신 호의에 어떻게 연락을 드려야 하나 고민고민 하지만 여전히 나이스한 방법은
    모르겠거든요. ^^;; 그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괜찮으신 시간에 일전에 소개해 주시기로 하신 분 한 번
    함께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급했던 프로젝트는 현재 정체되어 가만히… 아주 가만히 있는 상태입니다.
    뵙고 두어달간 저희 팀에서 구상했던 내용 보여드리고 제품화할 방법들 있는지 한 번 여쭤보고 싶구요,
    아울러 자발적 모임의 성공적인(?) 경험들 있으시다면 그 또한 함께 나눴으면 합니다.
    그런데 저는 뭘 드릴 수 있을까요… 저녁은 제가 사도록 할게요.
    평일저녁 아무때나 날짜 정하시고 알려주세요. 댓글로 확인하겠습닏.

    • 아라

      응답
      2010년 8월 20일 @ 7:49 오전

      답이 늦었네요. 지금 서울에 있지 않아요.
      댓글이 비밀글로 달리지 않아서 블로그에 남겨두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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