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enty-two

2011년 2월 8일   |   by 아라

그녀는 아직도 탁자에 엎드린채 울고있다.
울음때문에 들썩거리는 그녀의 어깨를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일부러 발을 까딱거려 바닥의 자갈 소리를 내보았다.

그녀와 내가 앉아 있는 탁자옆으로 기차 선로가 지나고 있다.
찻집을 기차역처럼 꾸밀 생각을 하다니, 가게 주인의 안목이 새삼 훌륭하게 느껴진다.
여기 놓여있는 테이블과 찻잔들과 주변 손님들을 제외한다면 이 곳이 찻집이라는 것을
금방 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실내장식이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몹시 기분좋고 아늑한 공간이었을 것이 분명한 곳.

– 저기 미안한데… 그만 그치고, 내 말 좀 들어봐.

한참 울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켰다.
그제야 조금씩 울음을 그치기 시작한 그녀는 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빨갛고 통통한 볼에 눈물자국이 가득하다.
눈물에 젖어 있어도, 그 눈이 참 크고 예쁘구나.
짧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을 이었다.

– 사실 나는 네가 왜 미안해 하는지 모르겠어…
  난 아무렇지도 않거든. 조금 전의 말은 안들은 걸로 하면 안될까?

그녀가 갑자기 딸꾹질을 시작했다. 답답한 모양이었다.
가슴을 두 번 탁탁 치고는, 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 제대로 안 들었나본데 내 말은… 처음부터 너랑 친구할 생각 없었다는 얘기야. (딸꾹)
  너랑 친한 현민이와 가까워지고 싶어서 너에게 말을 건거야.
– 그게 나빠?
– 너는….(딸꾹).. 이해가 안되는거니? 말귀가 어두운거니?
– 난 오히려 네가 그 말을 늦게한게 나쁜거 같은데.
  빨리 말했으면 녀석이 군대가기전에 네 마음을 알았을거잖아.

정신이 반쯤 빠져나간 것처럼 나를 멍하니 보는 그녀.
처음보는 눈물 자국, 지워진 화장, 간간히 딸꾹질을 하는 모습이 낯설다.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들이키는 그녀.

– 내가 미안한건 널 이용해서가 아니야. (딸꾹)
– 그럼?
– 나 이제 너랑 같이 안 다니려고 다 털어 놓은거야.
– 그러니까 미안하다는 게 그냥 학교서 붙어다니지 못하는거 그거?

다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서인지, 나와의 대화가 괴로워서인지 잘 모르겠다.
눈화장이 얼룩진 그녀의 눈이 좀 부은것도 같다.

– 분위기 파악 정말 못하는구나. 애들이 너 싫어하는건 아니? (딸꾹)
  네가 미움받는 이유는 수십가지도 더 댈 수 있어.
– 납득은 안되지만, 나를 싫어하는 건 나도 알고 있어.
– 넌 정말이지.. 알 수가 없구나. 여태 얘기한 건 절교하자는거야. 이렇게 말해줘야겠니?
– 그러니까… 나 괜찮으니까 안하겠다고.

우리의 대화는 한 시간 넘게 계속되었지만 서로의 입장이 팽팽하게
조금도 좁혀지지 않고 탁자옆 철도 선로처럼 평행을 긋고 있었다.
참다못한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손을 휘휘 내젓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만다.
의자에 밀리는 거친 자갈소리가 날카롭게 귓가를 긁는다.

– 불러낸거 빚지기 싫으니까. 이건 내가 계산할게.

흥분해서 떨리는 손으로 계산서를 집어들다가 한 번 떨군다.
다시 계산서를 집어든 그녀는 황망히 출입구쪽으로 나갔다.
뒤돌아서는 그녀의 원피스 자락이 일으키고 간 바람이 코끝에 와 닿았다.
교양시간은 원래 땡땡이 치는거라며 만화방에 끌고가던 그녀에게서 나던 향기.
H.O.T 짱이지 않냐, 난 장우혁이랑 결혼할거야 하면서
사진에 키스를 마구 퍼붓던 그녀에게서 나던 그 익숙한 냄새.

그녀가 가게를 나간 후에, 그리고 얼마를 더 지나 코끝에 남아 있던
그녀의 향기가 완전히 사라지자 우리의 관계가 박살난 것을 깨달았다.
멍한 표정으로 그녀가 엎드렸던 탁자에 엎드려본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 – –

혼자 점심을 먹고, 하교를 하는 일도 제법 괜찮다.
혼자라는 것에 익숙해져보면 생각보다 크게 외롭지 않은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혼자있는 사람을 불편해 한다.
혼자는 괴롭지도 않다. 하지만 함께 있어야 하는 말 없는 공간은 숨막히다.

그 후로 그녀는 정말로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같이 작업대를 쓰기 싫어하는 아이들 덕분에 항상 넓은 책상을 쓰는 것은 좋았지만
복도 건너 앞자리에 그녀의 뒷모습은 가시처럼 찔렸다.
왠일로 그녀의 새로운 단짝이 늦는지 오지 않자 그녀는 초조한 듯하다.
나를 의식해서인지 계속해서 시계를 본다.
스토커처럼 한참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그녀의 자리로 걸어갔다.

– 옆에 좀 앉아도 돼?
– …..
– 얘기 좀 할래?
– …..
– 못 들은 척 하지 말고.
– ….

바람을 대하듯 그냥 그렇게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처럼
그녀는 미동도 없다. 화도 내지 않는다.
짜증이 나서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조금의 저항도 없는 그녀.

– 거기 내 자린데?

그녀의 손목을 꽉 쥐고 있는 내 옆에 어느샌가 그녀의 새 단짝이 나타났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그만 일어나라는 표정이었다.

– 얘기 좀 하고.
– 아, 곧 수업 시작하는데 나중에 하든지!

그녀 단짝은 새빨갛게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씰룩거리며 큰소리로 불만을 토한다.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부딪칠새라 뒤로 움찔 물러나는 그녀의 단짝은
돌아서서 가는 내가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 아.. 씨 뭐야. 버스 놓친 것도 짜증나는데 재수없게 저 년이 내 자리에 앉았어.

휴지로 책상과 의자를 열심히 닦아댄다. 웃기시네.
애당초 성년식부터 대학생활은 완전 뒤틀려버렸으니 상관없다.
동기의 연애편지를 대신 전해줬을 뿐인데, 어느날부터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동안 그 시선들을 견뎌준 그녀까지도 완전히 나에게서 멀어져버렸다.

혼자는 외롭지 않다. 불편하지도 않다.
너희들이 불편하게 나를 바라보는 공간에 있는 것이 불편할 뿐이야.

– – –

우체국 계단에 앉아서 햇볕을 쪼인다. 몹시 덥다. 하지만, 이것도 오늘로 마지막이다.
온 교정에 가득한 벚나무들의 푸르름, 분수대, 찬송가 소리가 들리던 채플실.
별로 추억할 것은 없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을 주섬주섬 시야에 담는다.

– 학생. 학과장님 오셨는데?
– 아, 예예…

우체국 계단의 살인적인 햇볕이 학과장실로 이어져 있다.
복도 유리창으로 들어온 햇볕을 피해서 걷는다.
온도차가 있어서인지 복도를 걷는 중간중간 현기증이 났다.
걷고 있는 동안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붕뜬 기분이다.
학과장실 문을 들어갔다 나오면 난 어떤 인생으로 살게 될까?
조용히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햇볕에 데워진 공기가 열린 문으로 쏟아져나와 숨막히도록 뜨겁게 맞이해준다.

– 자퇴원 도장 찍어달라며?

학과장은 이제 막 외출에서 돌아와 에어컨을 작동시키며 말했다.

– 예.
– 왜 자퇴하려고?
– 나중에 다니려고요.
– 그럼 그냥 휴학해.

불편한 왼쪽 다리때문에 약간 절룩거리며 정수기앞으로 다가간 학과장은
일회용 커피를 두 잔 타서, 한 잔을 나에게 건넸다.
그럴 줄 알고 대답할 말도 준비해뒀지. 선생.

– 서무과에서 등록금 납부기간이 지나서 등록금 납부전엔 휴학이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 등록금 내면 되겠네.
– 돈 벌어야 해요.

꾸벅 인사를 하고 커피를 받으며 학과장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았다.
흐음..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턱을 만지는 그.

– 자네, 담당교수랑 상담은 했나?
– 예. 도장도 받아왔습니다.

학과장은 주섬주섬 책상으로 다시 걸어갔다.
그리고는 아주 느릿느릿하게 서랍에 열쇠를 꽂고 돌리고는 도장을 꺼냈다.

– 뭐 도장 찍어주는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지. 하지만….

인주가 어딨더라 하면서 한참동안 찾기까지… 저 영감 정말 굼뜨네.
그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으니 슬슬 짜증이 났다.
그는 도장을 인주에 꾸욱 누른후, 뒤집어서 위아래 구분을 살펴본 다음 말을 이었다.

– 공부는 때가 있는 법이야. 그걸 놓치면 끝이지.
  모든건 다 거기에 맞는 시간이 있으니까 잘 생각해. 나중에 후회말고.
  자… 이제 된거 같군.

그는 자퇴원에 도장을 찍어주고 이제 그만 가도 좋다고 손짓을 했다.
놓치면 끝이라…. 이 곳의 시간들은 이제 놓치지 않을 수도, 놓을 수도 없다.

– 학과장님.
– 뭐 더 할 말이 남았나?
– 복적 확인서 한 장만 써주십시요.
– 복적 확인서? 듣도 보도 못한 그건 뭐냐?

도장에 묻은 인주를 휴지로 닦아내던 학과장이 나를 바라보았다.
마른침이 넘어간다.

– 나중에 학교에 복적할 수 있도록 확인서 써주시면 안될까요?
– 허허허허… 재밌는 친구일세.
  자네가 그런거 써달라하지 않아도 언제든 원하면 복적할 수 있어.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되네.

껄껄 웃는 학과장 뒤 유리창 밖으로 벚나무 이파리가 흔들린다.
더운 미풍이 교정을 훑고 지나갔다. 아까 복도에서 느꼈던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자퇴서를 교무과에 내는 순간 그녀와의 연결고리는 모두 사라진다.

– 나중에 복적이 안되면 어쩌나요?
– 그럴 일 없네. 교칙이 그러한데….
– 그럼 확실한건데, 안 해주시려는 이유도 없잖아요.

나는 점점 떼를 쓰고 있었다.
학과장은 처음에 어처구니 없어하다가 나중에는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그냥 여기에다가요. 이렇게… 제목 쓰고…
  제 학번 밑에 복적이 가능함을 확인한다고 한 줄만 써주시고
  도장 찍고, 오늘 날짜만 박아주세요. 예?

연습장에 학번을 갈겨쓰고 학과장에게 내밀었다.
그는 연습장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골 때리는 친구구만…

딱히 해주지 못할 이유도 없었기에 반박할 수가 없던 그는
예의 그 느린 움직임으로 일어나서 사물함을 열고 깨끗한 A4 종이를 한 장 꺼내왔다.

– 자네가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게 위안이 된다면 써주지.
  그래도 최소한 제대로 된 종이에다가 써야지.

나는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냈다.
학과장은 도장에 다시 인주를 묻히고 확인서에 도장을 찍어준다.
그리고 확인서를 건내주며 이제는 진짜 용무가 없는거지?하고 도리어 내게 확인한다.
그럼요.하고 더 이상 여대생이 아닌 내가 여대생처럼 발랄하게 미소 지으면서 꾸벅 인사를 했다.

이제는 진짜로 학생도, 휴학생도 아닌거로구나.
재미없던 학교는 PC통신과 글쓰기를 가르쳐주었었다.
심심했던 학교생활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조금 서운하다.

복적 확인서를 가슴에 대본다.
오롯하게 나에게 남은 지금까지의 좋았던 시간에 대한 흔적.
학교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지만, 지금까지의 시간을 이렇게 갖기로 한다.
가끔 이 순간을 생각할거야. 고마웠어. 22.

– 짧은 대학 시절이 좀 괴로웠던 이유들이 생각나는 요즘. @A-R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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