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동화

2011년 5월 14일   |   by 아라

공원에 보이는 사람은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기 엄마 몇몇, 햇볕을 쪼이는 노인들. 학교를 땡땡이 친듯한 젊은 커플. 그리고, 이 풍경에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소녀 한 명. 아기 엄마들과 노인들은 무엇인지 끝없이 수다를 떨고 있고, 저쪽 벤치에 앉아 있던 젊은 커플은 실랑이를 하더니만 아가씨가 좀 토라진 모습으로 돌아 앉는다. 그와중에 소녀는 공원에서 혼자 꽃을 팔고 있었다.

한적한 평일의 공원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때문에 소녀는 정오가 다되도록 한 송이도 팔지 못했다. 하지만 별로 그런것을 개의치 않는지 소녀는 간간히 고개를 들어 바람을 느끼거나, 새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때, 젊은 커플의 청년이 소녀에게와서 말을 걸었다.

” 장미 얼마예요? “
” 어느 장미의 가격이 궁금하신가요? “

청년은 잠깐 고민하더니, 이거라는 말로 장미를 가르켰다.

” 노란 장미는 천원이예요. “
” 아니요. 분홍색이요. “
” 그건 이천원이예요. “

청년은 분홍 장미를 달라고 말했다.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행동을 보니 소녀가 눈이 먼것 같기도 하다. 소녀가 더듬더듬 장미를 꺼내어 청년에게 건내는데, 혼자 벤치에 앉아 있던 아가씨가 일어나서 가버린다. 소녀의 굼뜬 행동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청년은 무심코 벤치를 바라보았다가 아가씨가 일어나서 가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청년은 그녀를 잡기 위해 뛰어간다.

” 저기요! 돈은요? “

청년은 소녀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지 장미를 든채 그대로 뛰어가 버렸다. 소녀는 쫓아가지 않는다. 아니 못 쫓는 것이겠지만. 소녀는 멍한 눈을 들어 청년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다가 꽃바구니를 정리했다.

해가 조금 기울었다. 나는 책을 덮고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5시. 해질녘이 가까워 오는 시간. 예상했던대로 그녀는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자신이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다. 이제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자리를 정리하며 채비를 하다가, 다시 꽃 파는 소녀를 바라본다. 소녀는 자리에 쪼그려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직도 이천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소녀가 조금 안타까웠다. 저 소녀도 이제 집에 보내줘야 할 것 같다.

” 아까는 미안했어요. “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 좀전에 장미요. 여자친구가 일어나서 가버리는 바람에 붙잡느라고… “
” 아아… 아까 장미 사가신 분이군요! 그러셨구나.. 괜찮아요. “

역시 그녀는 눈이 멀었다.

” 어머니 드릴 장미도 한다발 묶어주시겠어요? 아까 못 드린 돈하고 같이 드릴게요. “
” 어머 그럼요. 무슨 색으로 드릴까요? “
” 똑같은걸로. “
”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열심히 더듬거리며 포장을 하는 소녀를 본다. 당신이라도 마음의 상처를 하나 지우고, 편안한 마음이 된다면 내 말이 거짓이어도 용서 받을 수 있겠지.

” 하루 종일 기다려도 손님이 오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사실은 아까 저에게 말을 건내 주신 것만으로도 기뻤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꽃까지 사주시니까 뭐라 말할 수 없이 고마워요. “
” 하루 종일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쉽지는 않죠.”

소녀의 꽃 포장이 거의 끝나간다. 얼굴은 여전히 미소를 띈채로.

”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기다림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바람도, 새 소리도, 청명한 공기까지 모두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저는 그냥 그 순간안에 있는거니까요. “
” 같이 기다려줘서 고마웠어요. 사실 전 오늘 엄청 지겨웠답니다. “
” 무슨… 말씀이예요? “
” 꽃도 그렇고. 지금 이 이야기들도. 아무튼 고마워요. “

소녀에게 돈을 쥐어주고 돌아섰다. 눈 먼 소녀는 나와 청년을 구분하지 못했지만, 그것도 괜찮은 것 같다. 그림자가 점점 길어진다. 하루가 끝나가고 마음도 가라 앉는 것 같다. 뚜벅 뚜벅 공원을 걸어나가듯이 그녀에 대한 마음도 조금씩 빠져나가는 어느 봄날.

– 제목만 써놓고 두 달. 완성까지 길었지만 마음에는 안 드는군. @A-R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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