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 (Full Moon)

2011년 5월 29일   |   by 아라

무심한 바람결에 잠이 깬 것은 이른 새벽이었다. 펄럭거리는 얇은 쉬폰 커튼 사이로 보름달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언제나처럼 그녀가 잠들어 있다. 신경이 예민한 그녀는 내가 일어나는 반동에 얕게 잠이 깬듯 몸을 조금 꿈틀거리다가 다시 잠들었다. 잠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옛날 일이 떠올랐다. 시궁창같던 내 인생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나를 낳았었다. 그건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우리를 양육하기 위해서 밤마다 어딘가로 사라졌다. 애초부터 완전하지 않았던 편모 가정의 우리는 늘 가난에 허덕였고, 근근히 버티던 우리 가정은 큰 형이 교통사고로 죽던 날 순식간에 붕괴되고 말았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버린 것이었다. 그 후, 하루 먹고 살기도 버거웠던 우리들의 삶은 생존 자체가 목표였다. 사회가 무서웠고, 삶이 두려웠던 어린 날의 나는 모두를 적으로 보았다. 가까이 다가오면 죽여버릴 기세로 달려들곤 했던 분노가 가득했던 나. 그렇게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 거리를 배회하던 나를 따뜻하게 대하던 유일한 존재가 그녀였다.

그녀가 몸을 뒤척인다. 창밖의 달빛에 반사된 그녀의 얼굴이 여신처럼 빛나는 것 같다. 나의 경제적 무능함도 사랑했던 그녀. 함께 사는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표정을 하던 그녀. 직장에 나가 있는 동안 내가 떠날 것이 두려워서 현관문을 꽁꽁 잠근채로 외출하던 그녀. 평화롭게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그녀의 곁을 떠나는 것이 그녀에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불고, 커튼이 다시 펄럭인다. 갑자기 창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조심스레 창틀위로 올라가 오랜만의 새벽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도시의 불빛들과 교회 십자가, 깜빡깜빡 점멸하는 교차로의 신호등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때 갑작스레 내 어깨를 감싸는 다정한 손.

” 그러지마. 나가면 안돼… “

그녀는 잠에 겨운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창문을 닫는다. 그리고 커튼을 당기자, 보름달이 순식간에 감춰진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 졸음이 가득하다. 그녀는 나의 볼에 볼을 맞대고 부비다가, 내 머리를 품에 감싸고 누웠다. 갑자기 한순간의 이상하고 불안했던 생각이 달아나고 새삼스레 그녀의 품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맞아. 이 행복이 끝나지 않겠지. 내 말을 알아들을리는 없겠지만.

” 냐옹. “

– 여름밤이 시작되다. @A-R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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