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하고도 64년 후의 봄

계단 층계마다 융단처럼 돋아있는 이끼위로 따뜻한 햇볕이 쏟아진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때문에 정원은 마치 정글과 같았다.
노인은 의례 그랬듯 바깥으로 나와 나무 그늘에 앉았다.
그는 잠깐동안 건물 꼭대기의 다락방 창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 생명체에게는 시간과 장소가 모두 중요하다면서요?
  시간과 장소의 강은 운명에 맞서는 것으로 건널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용도 해치웠고, 키스도 했는데 어째서 그녀는 깨어나지 않는겁니까? “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폐허속에서 노인은 나무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마 노인에게만 들리는 환청이 있는 듯 했다.
노인은 어느새 자신의 감정에 취해서 울먹이기 시작한다.

” 이 곳도 아니고, 지금 이 시간도 아니란 말인가요?
  이 끔찍한 시간의 길목을 지키고 서서 64년을 기다렸는데…. “

한동안 훌쩍거리다가 잠잠해진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나무 그늘에 방치되어 있던 녹슨 검을 빼어들어 나무를 향해 돌진했다.
이제는 잡초도 베어지지 않을 것 같은 허술한 칼날은 깡!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 거짓말! “

온힘을 다해 나무에 부딪친 노인은 순식간에 녹초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귓가에 맴돌던 환청은 끝없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 자네에게 말해주지 못한 것이 있군.
    시간과 장소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인연이야….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말게….

다락방에 잠들어 있는 공주는 아직도 긴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노인은 어쩌면 그녀가 영영 깨어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백년이 아닌, 백만년 후의 누군가가 용도 없고, 마녀도 없는 이 곳에 왔다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시간과 장소가 충족되면 그녀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시간을 붙잡으려 자신의 시간을 다 쏟아붓고도
인연의 길목을 뒤틀어 용사가 되었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시간들이
머릿속에 순식간에 쏟아져 들어왔다가 사라진다.
이제 노인은 너무나도 졸리고 피곤했다.

모든게 끝났어… 말할 기운조차 없는 노인은 눈을 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은 노인은 금방이라도 땅속으로 꺼질것 같았다.
그리고 곧이어, 가을 바람처럼 선득한 차가운 손이 노인의 볼에 와 닿는다.

그는 힘겹게 눈을 떴다. 잠겨드는 시야에 환영이 보인다.
상상했던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공주가 걱정어린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인은 눈앞에 있는 그 모습의 실체가 진짜로 공주인지, 자신의 꿈인지 혼란스러웠다.
당신인지 당신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신이 깨어 있는 모습을 보긴 보게 되는군요..
라고 기운없이 속으로 중얼거린 노인은 3초간의 만남을 위한 64년의 기다림을 끝내게 되었다…

– 용을 해치운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A-R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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