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혹은 리메이크 게임에 대한 소고

모바일 게임 개발사에서 IP (Intelletual Property: 지적재산권) 게임을 만들고, 출시하고, 망하고도 1년이 흘렀다. 이제 내가 참여했던 게임은 아예 마켓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매출이 제로가 된지 오래되어서 유지비가 더 많이 들거나, 유통사의 이미지에 안 좋은 영향을 주어서 아예 삭제되었을거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그야 말로 갈아 넣으며 숨쉴수 없는 지옥같은 개발을 반년이나 1년을 하더라도, 일주일이면 그 결과가 매출로 판가름나는 것이 모바일 게임 시장이기때문에, 사실 망한후 1년이라는 시간은 억겁의 시간에 가까운 셈이다. 그 사이에 모바일 게임의 생태도 많은 것이 바뀐 것 같다. 아직 빈틈은 있다고 해도, 거대 유통사들이 다 차지한 마켓은 거의 확실한 레드오션의 시장이 된 기분이 든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실패를 관조하며 살아가고 있다. 미래의 어느때엔가 또 다시 인생의 순간들을 갈아 넣으며 살아야 하는 개발사로 돌아 갈 수 있을까? 그것은 불확실하지만, 오늘 문득 그 실패로 얻은 것들을 조금이나마 써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팔리고 잘 팔린 상품 일수록, 잘 나가던 시절의 IP나 오리지널 게임에 대해 소비자가 갖는 이미지 라는 것이 있다. 바꿔말하자면,  IP 게임이나 리메이크 게임이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소비자에게는 경험에서 기인한 ‘기대 이미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분명 이미지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고 IP를 사오고, 개발에 착수하게 된 것임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미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곤 한다.

리메이크는 오리지널 게임이 있고, 바뀔만한 요소는 세월이 흐른데 대한 과금정책과 같은 것이어서 조금 단순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미지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싶다. (장르나 게임성이 바뀌는 경우는 아예 다른 게임이니 리메이크가 아니라 IP게임이 아닐까?) 다른 플랫폼에 오리지널이 잘 이식되었는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듯하다. 인터페이스가 플랫폼의 특성에 맞게 잘 구성되었는지, 조작감을 어떻게 했는지.. 아무튼 모든 기준은 오리지널의 기대 이미지에서 비교된다. ‘잘 이식되었다.’ 정도의 평가라면 최고의 칭찬이 된다.

IP 게임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복잡하다. 이 복잡한 사정은 이미지를 잘 훼손시킨다. IP는 오리지널 게임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기때문에 IP와 어울리지 않는 장르나 게임성에 이미지를 구겨넣어야 하는 상황이 가장 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도 빨리 빨리 찍어낼 수 있는 장르에 구겨 넣다보니, 누가 구매 대상인지에 대해서 망각하는 것이다. 카피캣이 그렇게 많이 시장에 나와 있는걸 보면,  게임 바닥의 사정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내가 참여했던 게임의 리뷰 페이지에서 가장 많이 등록되었던 내용은 로봇 전투 IP를 가지고 고작 ‘Run’ 게임을 만들었다는 질타였다. 10년이 지나도 내성이 생기지 않는 사용자의 질타는 끝없이 나를 변명하게 만들었다. 나는 거기에다가 “개발팀에 합류했을 때는 이미 장르가 결정되어있었습니다. 저는 죄 없어요.” 라고 답글을 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일주일안에 승부를 보지 못하면 끝나는 매출 그래프는 애초에 올라가지도 않았지만, 그나마의 매출도 끝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본부장님에게 게임 출시후의 분석 보고를 해야했지만, 그것은 기획을 책임지고 있던 나에게 일종의 시말서였다.

게임이 마켓에서 없어지지 않는 이상, 나빴던 무언가는 개선이 되어야 한다. 시즌2를 준비하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질타와 보고 일정이 쏟아졌지만 다행히 정신은 건강한 상태였다. 슬럼프에서도 빠져나온 후였고, 시즌2의 개발 방향에 대한 보고 결과도 아주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리고, 나는 시즌2를 준비하면서야 비로소 제작자로써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중요한 포인트들이 있다. 작지만 중요한 디테일이라는 것이다. 유머감각, 없어도 될 것 같은 작은 친절함(화면을 가리는 가이드나 몰입을 방해하는 튜토리얼이 아니다)과 같은 부류의 것들이다. 그런것들은 마음의 여유와 애정이 없으면 절대로 나타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장르 결정 권한이 없었다면, 최소한 오리지널에 대한 공부가 있었어야 했다. 나는 이 공부를 게을리 한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분명 언어, 자료, 라이센스(단일 IP도 시리즈별로 라이센스 소유가 분할되어 침범할 수 없는 서브 브랜드들이 있는 경우)의 장벽은 존재한다. 거기에서 실패하고, 귀찮은 것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기며 아. 시간도 없는데 .. 하는 순간 러닝 게임을 찍어내는 과거의 내가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시간이 없었기때문에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거기다 시스템 담당이 퇴사를 해버렸다. 조급해져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슬럼프를 빠져나온 탓인지 침착할 수 있었다. 데이터 테이블을 뒤져보고 절망하고, 기존엔 모바일게임이라 바쁘다고 준비하지 않았던 설정도 붙였다. 출시작은 과금모델, 밸런스도 문제였지만, 성능차이가 없던 로봇이 제일 문제였다. 그런걸 검토하지 않고 시장에 내놓은 내가 부끄러웠다. 결국 이 실패는 내 잘못이었다. 그래서 시즌2에서는 단조로웠던 로봇들에게 특성을 추가하고 등급을 매기게 되었다. 분명 러닝게임이지만 원작에 있는 로봇의 특성을 가져와서 러닝에 맞게 변경하는 식의 작업을 추가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보조 특성(시리즈에서 나온 여러가지 기술이나 스토리에서 언급된 것들)이 기타 컨텐츠로 이어진다.

시즌2는 부족했지만, 그렇게해서 출시작에 대한 실망을 채우기엔 나쁘지 않은 모양으로 다듬어졌다. 생각했던 나쁜 점들이 비교적 많이 개선되었다. 솔직히, 더 많은 기능을 붙였지만 덜 힘들었던 때였다. 다만 시즌2에 대한 후회는 출시를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시즌2의 시장 반응이 궁금했다. 그래봐야 어차피 망한 게임이 기적적으로 반등하는 것은 거의 없는 일이라 낙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가보지 않은 길’이 되어 사무치게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팀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좋았겠지… 어쩌면 이것은 또한 팀 해체의 밑바탕인 출시작의 실패와 그 외 내 관리 자질의 문제일 수도 있다.

글을 쓰고나니 쓸데없이 이야기가 너무 길었나 싶다.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하여 한줄로 요약해드리자면, ” IP나 리메이크는 ‘기대 이미지’를 충족시키라.” 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결정권이 없거나 바꿀 수 없는 틀을 마주하게 된 기획자는 주어진 자원으로 최대한 “기대 이미지”를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

– 언젠가 시즌2를 포트스모템으로 만날 수 있길 … @A-R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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