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 조지훈. 사모 –

# 늦잠을 잤다. 점심을 먹고 또 잠들었다. 피곤한 일도 없는데 추워서 운동도 가지 않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동네 카페에 갔다. 어제도 왔었는데 커피값이 500원 올랐다. 하루사이에 15% 가까이 인상된 셈인데, 커피 한 잔의 가격은 사실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작년까지 해주던 단골할인 20%가 사라진 차에 인상이 된 상황이라 체감상 거의 30%가 넘는 돈을 더 지불하는 기분이 든다. 카페안에 베이커리가 들어오면서 원두 로스터도 치워졌다. 굳이 원두때문에 이 곳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다른곳에서 로스팅된 것을 가져오는 것인가?… 시간이 지나니 변하는 것이고, 주인이 바뀌었으니 다른 것들도 바뀌어 가는 과정이겠지. 회원 적립금이 5만원이 넘게 쌓여 있다. 원두의 맛도 변하게 된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봐야지. 10년이 넘는 오래된 카페같은건 우리나라에선 좀 무리이려나…

# 와서 할 일이 없어서 조지훈의 시를 필사했다. 만년필도 가져오지 않았고, 처음 빈종이를 마주하며 가다듬었던 마음도 세 줄을 넘기자 다급해져서 날림 글씨가 된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일기를 안 쓴지가 오래되어 기록을 남기는 차원에서 끄적끄적 적어본다. 그러고보니, 서예가 차분한 마음을 갖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던 옛날 일들이 생각난다. 어렸을 땐 그런건 좀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지. 지금에서야 서예를 배워둘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시를 읽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시집을 사본 적이 없는데, 마지막으로 샀던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날 정도로 오래된 일이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국민학교 졸업 선물로 줬던 것이 서정윤 시집이었는데, 연습장 표지에 인쇄되던 단골 시였다. 요즘은 카카오톡 캐릭터 일색이겠지 생각하니 나도 참 옛날 사람이다. 이젠 시인이라는 직업조차도 희소한 직업이 됐을것이다. 지식을 넓히는 좋은 책들은 많아졌는데 마음의 깊이를 더하는 일은 각박해진 건 아닐까.

– 기형도 시집 한 권 사러 가야겠다.. @A-R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