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

“내가 말라 죽을 것 같아서 하는거야.”

때는 바야흐로 2015년이었고 나는 명백한 백수였다. 재주랄것도 없지만 곧 런칭할 게임의 NPC 대사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돈도 받았고… 액수는 비록 많지 않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했던 알바라서 재미있었다. 나중에 최종 문장들은 개발팀에서 많이 손봤지만, 전체적으로 오글거려서 지인들에게는 알린 바가 없다. 내 세계관도, 내 게임도 아니고 오더대로 만든 대사들이라 오글거려도 뭐… 아무튼 게임은 출시되었다.

그 후에, 한 번 더 개인적으로 의뢰받은 앱 기획에 소소하게 돈을 받았다. 나는 이 돈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기획서를 마무리하지 못했고, 개발이 지지부진했던 것에 미완성의 기획서 탓도 있으니까. 대개의 개발자들은 엉성하고 구멍많고 미완성인 기획서를 가지고 코딩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핑계랄까, 여전히 이전 버전의 내용이 개발중이라 진행이 더뎌서 기획서 버전업을 게을리 했고, 기획서 버전업이 느려지니 개발이 더 느려지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돌이켜 생각해도 이것은 전적으로 기획의 잘못이다. 개발이 더뎌도 문서 버전업은 했어야 했다.

결국, 페이스북 API 정책이 바뀌었네 어쩌네 하면서 로그인도 못 붙인채로 개발자는 취업 – 이직 – 결혼의 이슈를 가지고 오면서 정기모임에 불참했다. 결국에 그는 카페 사장님으로 전직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상태로 쫑이 났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수많은 이슈들이 진행되는 중에도 문서를 옛날 버전 그대로 뒀을까? 개발자 입장에서 구닥다리 문서가 트렐로에 그대로 올라가 있는 꼬라지를 보면 도통 코딩할 기분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과거에 월급을 받고 라이브를 진행할 땐, 새벽에 카카오 아지트에 남긴 사장님 불호령 한 문장에 새 시즌 기능 문서를 사흘만에 찍어내기도 했었는데. 역시나 개인의 취미활동에 공돈을 받았단 느낌이었던지, 결과 자체가 통째로 내 책임감의 부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적으나마 돈이 오가야 진행이 될 것 같다고. 한사코 거절하는 나에게 저렇게 말했었다. 내가 말라 죽을 것 같아서 하는 것이라고… 너무 바쁘고 고통스러운 일상에 흥미로운 취미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사람을 부리는 일에 돈을 쓰지 않는 것은 안될 일 같다고. 그렇게 내 마음에 부채가 남게 되었다. 작업실을 하다가 망했을땐, 모두가 각출했고, 모두가 관심밖이었고, 다들 욕심만 있고 게으름에 지지부진했을 땐 하나같이 다 게을러서 그냥 모두의 잘못이라 마음이 편했는데…

2년전에 넌즈시 진행 근황을 물어보니 그가 “뭐 언젠간 만들어지려나? 아마 못 만들겠지?” 하였다. 역시나 그 언젠가는 오지 않았다. 앞으로도 오지 않을지도… 그런데 요즘들어 참 몹시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죄의식도 털고 싶고. 언젠가 괜찮은 개발자를 만나거나, 혹시나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올지도 모르니까 기획서 버전업을 해야겠다. 4년만에….

2 thoughts on “그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

  1. 참… 그게 게임개발자의 숙명인것같아요. 50넘어서까지는 하기 어려우니 어차피 나와서 자기 사업을 하던지 인디로 만들던지 결단을 내리는 것같습니다.
    저도 한 2년 뒤에는 인디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나오게 될지 몰라서 지금부터 기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ㅎㅎㅎ
    제가 만들고 싶은 것도 그때부터는 만들어야죠.

    1. 이야.. 멋지네용.. 저는 창의력도 고갈 상태인것 같아요. ㅎㅎ 어떤걸 만드실지 기대가 됩니다. Pyan님은 블로그가 없으신가요? 음.. 질문하고보니 참 시대에 뒤떨어진 질문이네요ㅋㅋ 요즘 세상에 누가 블로그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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