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쉬초콜렛 같았던 그 애

첫 맛이 진하고, 끝 맛이 쓴 허쉬초콜렛.

소년이 있었다.
나에겐 그저 동경이었던 소년.
내게 한 번 말을 건넨 적도
눈길을 준 적도 없는 소년.

갈색 머리카락을 부서지듯 날리면서
계단을 달려 내려오던 그 소년이
바람을 일으키며 내 곁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설레어 죽을 것만 같았다.

언젠가 다리를 다쳐
몹시 절며 귀가하던 소년의 뒤를 밟아
그의 뒷모습이 사라진 집을
가만히 올려다 본 기억이 있다.

누군가의 애정어린 손길로
지붕까지 얌전하게 틀어올린 담쟁이가 있는 베란다.
말소리가 들려 올 것 같은 따뜻한 불빛이 비치는 창가.
마치 동네에서 그 집만 달랑 오려낸 듯
딴 세상같은 느낌을 주는 집이었다.

소년이 보고싶어 몸살을 앓았던 겨울.
교복 주머니에 허쉬초콜렛을 넣고
그 집앞을 지키고 서서 무작정 그 애를 기다렸다.
철 없는 열일곱 –
전해줄 용기도 없었으면서.

두 시간을 그렇게 추위에 떨다가
소년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그 날
마음처럼 감기몸살에 시달려 며칠을 끙끙 앓았다.
몸도 마음도 너무 추웠던 겨울이었다.

그리고,
그냥 바라보기에도 아까웠던 그 소년은
내가 어떤 인연을 기대하기가 무섭게
이사를 가 버렸다.

나는 아직도 그 애의 모습을 기억한다.
도무지 사랑이라 말하기엔 너무나 투명한 기억.
요즘도 가끔 그 애가 생각 나곤 한다.

한 번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던.
너무나 쓰게 이사를 가버렸던.
허쉬초콜렛 같았던 그 애 –

– ara@ara.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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