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편지

감기에 걸렸을 때 그녀가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
겉봉에는 내가 감지하지 못한.

“쟈스민 향이 나고 있어.”

감기는 열 번도 더 걸렸다가 나았고.
그녀가 떠난후에 편지를 찾아냈다.

향기도 떠났다.
감기도 나았는데 그때처럼
쟈스민향을 알 수 없다.

– bombi76@hitel.net –

Mud Game

헤로인 같은 Mud Game
거기에서 잃은것 ( ≥ ) 얻은것.
가상은 현실을 앗아간다.

감수성과 친구와 연인과 생활 패턴.
심지어는 이성조차.

남는것은
아이템에 대한 지식과 요금 청구서.

– bombi76@hitel.net –

Bad Boy

나는 스물일곱이 되었다.
그리고, 이해관계와 손익의 중간에서
어려운 선택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단지 그 변변한 학벌때문에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아니 변변한 학벌을 날조한 상황때문인가?

무엇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꼬여버렸는지
무엇때문에 저 사람에 대한 마음이 붕괴되었는지
나도 알 수가 없다.

변해가는 내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는 것도 유쾌하진 않다.
그는 절규하고, 때로 웃거나, 소리없이 울곤 했다.

아직도 감정과 감정사이에 생각이 섞여있는 그는 감정을 숨기는 일에 서투르다.
나는 건조한 생활과 무의미한 사고속에서 메마르게 느끼고 행동한다.
내 감정은 과거의 어느순간 상황의 암초에 부딪쳐 좌초되었다.
그 끝은 알 수 없다..

– bombi76@hitel.net –

장마

사랑은 짧게 웃고 길게 우는 것.
봄은 길고 옛사랑은 나를 많이 울렸다.

그리고
사랑은 떠나고 장마가 지고
다가온 그가 이렇게 말한다.

하늘이 대신 우는거라고.
너는 웃기만 하면 되는거라고.

거짓말쟁이야.

– bombi76@hitel.net –

단짝

젓가락. 구두. 귀고리. 벙어리 장갑…

이것들의 공통점은
한 짝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혼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애초의 한 쌍.
너와 나.

– 렛쓰비 공모전 bombi76@hitel.net –

고독

내가 아는 지식을 상황의 변을 위해 써먹어대고
언제나 그를 할말없게 만들어 버리는 못된 심성으로
한동안 나는 그를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지 모른다.

– ara@ara.pe.kr –

원터치 캔 같은 사랑

원터치 캔 같은 사랑.
그 뚜껑을 따려다 세번을 다쳤다.

부패하지 않는 영원함을 위해
진심을 향해 퍼붓은 방부제 덩어리.

“더 좋은 사람 만나.”

그 후의 완벽한 밀봉.
추억.
그리고 안녕.

대견하게도 홀로 크리스마스를 견뎌낸후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나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책상 금 긋고, 넘어오면 때리는
국민학교때 내 짝처럼 으르렁대던 아이.

그 애는 시험시간.
쩔쩔매는 나를 위해 지우개를 반 잘라주던 내 짝처럼..
필요할때에 자신의 마음을 잘라
나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를 아프게 한 상처들이
단지 포장에 불과한 이유라면
원터치 캔이 아닌 유리병을 택해야지..

소중히, 깨어지지 않게만 다룬다면..
낡지도, 녹슬지도, 닳지도 않는
맑고 투명할 사랑.

– ara@ara.pe.kr –

in my memory…

소포를 부칠일이 있어서 학교 우체국에 들렀다.
나오는 길에 옛기억을 더듬으며 걷고 있는데
게시판에 낯설고 커다란 포스터 한장이 붙어 있었다.

‘2000-1=1999 산업디자인과 과제전’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들.
그 때도 오늘처럼 추웠었다.
전라도사투리와 부산사투리를 섞어 말하던.
인물소묘 가르쳐 준다고 할때마다 내가 도망을 다녔던.
나와 동갑인데도 학교를 일찍들어가서 내가 오빠라고 불렀던.
185가 넘는 키때문인지 말을 걸 수 없는 위압감을 주었던.

함께 과제전을 준비하던 추운 아침에
갤러리 앞에서 있는 나에게 운동화 예쁘다고 말했던 그는
운동화 정말 예쁘다. 어디서 샀니? 프로스펙스?
나도 사야지. 뭐? 남자껀 빨간색이 없어?
그 대화를 끝으로 만난 적이 없다.

그의 입대 전 날에 과애들은 송별회를 준비했고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었다.
학교생활. 새로운 사람들. 복학생과 바쁜생활에 점점 그를 잊어가고 있을무렵에
그가 의가제대를 했다고 하는 소식이 들렸다.
송별회를 해주었던 아이들은 그 새끼 나쁜놈이네
돈 들여서 송별회 해주니까 금새 나오고.. 하면서 웃었고
나는 그때도 무표정하고 무감각했다.

바쁜 일주일.
두 번째 과제전은 정신이 없어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일주일 사이에 아무 말도 없이 우리를 떠났고
그 소식이 전해졌던 날에 나는 결석을 했다.

그도 없고 나도 없는 학교에서
우리과 과제전을 한다.
날씨가 너무 춥다.

성필이오빠..
그때 오빠한테 아프다고 맨날 거짓말하고 소묘 안배운거 미안해.
오빠가 너무 무섭게 말하고 못하니까 때리고 그래서
나 진짜 너무너무 하기 싫었거든.
그리고 송별회때 안가서 못 본 것도 너무 후회되고
좀 일찍 친해져서 한 학기만 늦게 입대하라고 말하지 못 한 것도 후회 돼.
오빠하고의 기억이 별로 없는데 오늘은 너무 춥고 과제전도 하고
나는 새로 빨간 운동화를 사 신고 왔기때문에
자꾸 오빠생각이 나는 것 같아.
오빠가 그 말한 이후로 난 빨간 운동화만 세 켤레 샀어.
잘 지내지? 잊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잘 지내. 알았지?

– bombi76@hitel.net –

편지

기억들.
일상을 깨우는 기억들.

아침을 먹고 편지함을 바닥에 쏟아부었다.
하루 하루 내 신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피부비늘처럼
기억에도 희미한 순간들의 비늘들.
그것들이 나의 감성을 깨우고 있다.

나만이 부를 수 있던 이름.
보드라운 머리카락에 얼굴을 부비었던 시간.
손을 잡고 걷던 거리들.
결별의 편지.

[운]이라는 친구는
과거의 어느 순간 내 앞에서 사라져 버렸고
지금 그녀는 내 방바닥에 엎드린채
우리 즐거웠던 시간을 노래하고 있다.

숱한 기억들.
기억의 일부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면서
내 감성도 함께 던져진다.

닫혀진 내 마음 밖을 서성이며 노크하던 사람들의 편지들.
그리고, 닫혀진 그의 마음밖에서 서성이다 결국
심리적인 진퇴양난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부치지 못한 나의 편지들.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너무나 쓸쓸하고 쓰라린 것.

– bombi76@hite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