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별

어제 아침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렇게 48초간의 통화가 끝나자, 작년 11월부터 진행되던 헤어짐이 비로소 종결되었다.

룩서를 알게된 것은 2009년 봄이었는데, 그 때는 지금까지 지나온 나의 시간중 가장 힘든 시기의 시작이었다. 나는 거창하게나마 인생의 쓸모를 찾고 싶었다. 전혀 남을 생각하지 않고 살던 나에게… 변변치 않은 노동력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쓸모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 때였던 것이다. 그렇게라도 가치있는 사람이고 싶었던 이기심 탓이었다.

내가 후원하던 단체는 모든게 까다로웠다. 결연아동에게 선물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후원금이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지도 않았다. 낙후된 지역의 아동과 결연을 해주고, 후원금으로 지역에 투자하여 지역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었다. 결연 아동과의 결연은 아동이 18세가 될때까지 유지된다고 했다. 변명이지만 그 후는 사느라 바빴고, 아이가 크는 속도도 알지 못했다. 막연히 아직 꼬마 아가씨이겠거니.. 후원아동을 보러갈 수 있는 프로그램도 아직 18세가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덮어버렸다.

그렇게 작년 11월중순. 한국사무소에서 메일 한 통이 도착하였다. 지역이 자립하게되어 결연이 종료된다는 청천벽력. 나는 그 긴 시간동안 아이에게 십여통에도 못 미치는 서신을 보냈다. 한국사무소에서 메일이 도착한 날, 아이에게서 편지도 도착하였다. 계절에 대한 이야기. 다음번 편지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알려주겠노라고.

다급해졌다. 한국사무소에 메일을 띄워 작별 인사의 편지를 보낼 수 있는지, 가능하면 마지막 선물을 보낼 수 있는지도 문의하였다. 담당자는 처음에는 귀찮았는지 자사쇼핑몰에서 판매하는 후원 선물을 보내라는 답을 하였다. 룩서는 2017년에는 한국 나이로 중학교 2학년이다. 쇼핑몰에 파는건 엽서나 동화책, 색칠공부 나부랭이라고…

그렇게 담당자와 몇 번의 메일을 주고 받았다. 화물운송요금을 지불하면 보내줄 수는 있다는 답을 듣고 급하게 준비해서 선물을 보냈다. 한국사무소는 생각만큼 적극적이지도 않았고, 다정하지도 않았다. 업무의 과중함 탓인지 담당자의 무성의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전화하고, 메일을 보내고, 조르고 확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방글라데시 사무소의 사정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러니 선물이 전달되었다는 소식을 듣기까지 꼬박 두 달여가 소요됐겠지…

이제는 룩서가 좋아하는 것을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어 결연이 종료되는 것보다는, 살고 있는 곳이 좋아져서 결연이 종료되는 것은 참 좋은 결말이다. 나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었으나 마음은 편했다. 그리고 며칠간 보류하였던 재결연을 결정하였다. 아시아권 여자 아동으로 부탁드린다고. 8년전과 똑같이…

– 룩서가 커서 의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꼭 이루길 바라며. @A-RA.COM –

SRT, 접속장애와의 싸움

이번 설은 유난히 짧기도 하고, 지난 추석보다 표가 빨리 빠지는 바람에 희망하는 시간대의 KTX 표를 못 샀다. 심지어 상행선은 연휴 마지막날 오후 11시 25분 표. 서울역에 도착하면 다음날 새벽 1시다. 추석때에도 자정 넘어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도착했던터라 도저히 그걸 탈 자신이 없어서, 수서고속철을 처음으로 시도해보게 됐다. 5시반에 일어날 자신이 없어서 아예 밤을 샜다. 3시까진 서버 점검이어서 3시 이후에 회원가입도 하고 메뉴얼도 읽어보고 모든 준비를 끝냄. 메뉴얼대로라면 로그인때 별도의 예매비밀번호를 빼면 모든 절차가 코레일 명절표 예매와 아주 똑같아서 어려움이 전혀 없음. 그런데….

그런데, 이 페이지를 스무번쯤 봤나?

9천번대의 대기표 끝에 나를 반기는건 이 페이지… 다시 메인페이지로 접속하면 분명 창을 하나 띄웠는데, 자꾸 다른창을 띄웠다는 팝업은 기본인가? 리붓해도 똑같이 나옴

대기표가 끝나고 로그인창으로 연결 오류가 날 때 이런 거라도 보여주는건 상태가 매우 좋을 때다… 테스트도 제대로 안한건가? 이 놈들….

1시간여 시도끝에 딱 한 번 간신히 로그인이 되었다. 그런데 예매 도중에도 오류가 나서 되돌아가기를 서너번 시도하고 결국 3분이 초과되어 간신히 예매하고 로그아웃되었다. 문제는.. 시간을 잘못 선택했어.. 상행선 오후 7시표…. 하…. 다시 들어가려니 엄두가 안난다.

– 집에 가기 힘드네…. @A-RA.COM –

너의 목소리는.

예매율 1위의 애니메이션 ‘너의 목소리는.’ 지난주부터 예매를 기다려 수요일에 표를 샀다. 영화는 오늘 오후 4시 10분. 늦은 점심을 먹고 코엑스로 가는데, 정안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늘 코엑스에서 박사모 집회 있대요.’ 역시나. 개찰구부터 빽빽한 인파에 휩쓸려 걸었는데, 시끌벅적하였다. 박사모 회원들이 점령한 코엑스는 태극기와 소음천국. 흉흉한 시국에 청춘멜로(?) 애니메이션을 보려니 왠지 죄의식이 들었다.

아무튼… 그것과 상관없이 즐겁게 관람했다. 등장인물을 설명하는 초반은 약간 지루했지만 결국 필요한 이야기들이다. 순수한 날의 연애, 아름다운 풍경들, 타임슬립의 판타지… 다양한 흥행요소들이 있었다. 보고 나오는데도 여운이 남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감독은 관객이 즐겁기를 바라며 제작했다고 한다. 그 분의 유명한 전작들은 단 한 편도 본 적이 없어서 주로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뷰의 이 내용은 참 듣기가 좋고… 곱씹어도 좋은 이야기다.

‘만약 내가 당신이라면….’은 모든 연민과 공감의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은 공감하는 법을 배워간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길러진 공감능력은 현실에서도 자신의 삶을 도와줄 것이다. 나도 내 작품을 통해 세계가 좀 더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 상상력이 세계를 좀 더 좋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의사나 경찰처럼은 아니지만, 감독 역시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는 말… 좋은 직업관이다. @A-RA.COM –

Substance Designer #2

오늘의 수업은 색 지정.

지난주 수업이 오후 11시부터 시작됐기에 저녁을 먹고 동네카페에서 노닥거리고 있었는데, 이미 9시부터 시작됐었다고 한다. 집에 들어와서 그 사실을 알았을땐 10시반이었지만, 방송사고로 인하여 다행히 그리 늦지는 않은 상황.

수업 내용은 십여분 남짓으로 짧았는데, 샘플 이미지를 가져와서 채널마다 색깔을 입히는 수업이었다. 툴 특성상 손맵이 필요없고, 별다른 그림 실력이 요구되는게 아니라 파라미터만 당기고 늘이는 수준이니 조작 자체는 쉽다. 그런데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그 와중에도 노드를 구분해서 보는 방법을 몰라서 색 채널을 찾느라 한참 헤매었다. 좀 더 풍부한 색감을 입히고 싶었는데 잘 안되는군.

트렐로에 다른 학생들 작업물이 올라오는 것을 매일 구경하는데, 현업 종사자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매일 새로운 작업물이 등록된다. 익숙해질때까지 계속해서 연습하는 것 같아서 상당히 고무된다. 나도 내일 새 파일로 다시 만들어봐야지.

– 다음주는 회벽 만들기 수업 @A-RA.COM –

Substance Designer #1

회사를 관두고 제일 자주 만난 지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쩜백일 것이다. 한 시간 넘게 하소연을 해도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고,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티타임을 거절하는 법이 없어서 우울을 떨치기 위해 그를 자주 찾아갔다. 맛집탐방을 좋아하는 쩜의 그녀가 다행히 나를 낯설어하지 않아서 식사도 여러번 하였고 이제는 그녀와 단 둘이 차를 마셔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런 전차로(….)… 11월말쯤 만난 자리에서 쩜백이 이런 저런 신기술 이슈를 이야기하다가, 졸업을 앞둔 학원생들에게 섭스턴스 디자이너에 대한 온라인 강의를 할거라고 하기에 나도 들을 수 있냐고 농담을 하였다. 3D 자동 생성(?)툴인데.. 와이어만 잘 짜면, 텍스쳐는 손쉽게 입히게 될거라는 이야기… 농담이었지만 어쩐지 정말로 진행됐고 얼결에 3D의 기초도 없는 내가 수강생들 사이에 끼게 됐다. 아무튼 그렇게 섭스턴스 디자이너 온라인 수업이 2016년 12월 31일 오후 11시를 전후하여 진행됐는데, 실시간 방송중에 보신각 타종소리를 들으며 .. 16년과 17년 사이 2년동안 공부만 한 것 같은 뿌듯한 기분으로 ..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수업을 들었다. 음.. 말 그대로 듣기만 했다. (….) 유튜브에 남을 녹화된 영상이라는 믿을 구석이 있어서 나중에 봐야지 하는 게으른 마음으로…

토요일마다 강의를 이어갈거라고 했는데, 1월 3일이 되어서야 미뤘던 강의를 틀었다. 상상만큼의 자동 생성은 아니었고, 2009년쯤에 만져본 랙돌 애니메이션 엔진 같은 느낌이 자꾸 오버랩됐다. 나 그거 중간에 관뒀었지.. 그런데 수업의 진입 장벽은 의외로 좁은 모니터 화면과 단일 모니터였다. 강의 파일을 13인치 화면안에 띄워두고, 프로그램까지 띄워 조작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뭐 여튼 느리게 이틀에 걸쳐서 수업을 다 들었다. 설명대로 따라하기는 했으나, 이해의 수준은 아니어서 아직 잘 모르겠다. 본인은 녹화본을 다시 듣더니 오글거린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친절해서 따라하기 좋았다. 이번주 토요일엔 색을 좀 더 자연스럽게 넣는 방법을 수업하겠다고 했으니 여기에 이어지는 내용이 되겠지. 실시간으로 진행되면, 이 좁은 화면에서 강의를 어떻게 들어야 할지 걱정이다.

첨부 이미지는 쩜이 3시간 넘게 신경써서 수업하고, 나는 이틀에 걸쳐  좁은 모니터와 싸우며 고생했던  문제의 그것. 학생들이 얼마나 따라와줄까를 걱정하는 쩜이지만, 나는 내 끈기가 더 걱정이다.

– 이렇게 적어놓으면 하루라도 더 붙잡을까 싶어 카테고리도 개설하였다. @A-RA.COM –

첫 달의 첫 주

새해가 됐고, 어영부영 6일이 넘어가고 있다. 나는 어느새 2년을 지나 백수 3년차에 접어들었다. 2014년부턴 심정적으로 복잡한 일들이 많았는데 오히려 블로그엔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늘 핑계가 많았다. 블로그 정리가 안되어서 글을 더 쌓았다간 정리를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았고, 준비가 안되어서 글도 미루었다. 몇 년동안 글을 미루는 사이에 엽편소설을 릴레이 연재할 수 있던 사이트인 한단설이 폐쇄됐다. 1년동안 썼던 블로그 일기조차도 고작해야 5개 남짓이다. 차근 차근 나이를 먹는것 외엔 별로 성과없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예전의 나는 구직자앞에서 거드름을 피며, 그의 이력서에 적힌 공백 기간에 대해서 ‘이 기간동안엔 뭘 하셨나요?’하고 묻곤 하였다. 휴식기였다던가,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 정말 게으른 사람이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보다 못하게 시간을 보내는 주제에. 내 자신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닐거라 생각을 하고 거만하게 굴었었다.

어쨌든 더 미루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청 부지런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다시 예전처럼 일기를 써야겠다.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백수 3년차의 매일 매일이 아주 변화무쌍하진 않더라도 날씨처럼 달라지기는 하니까.

– 올 해는 작은 목표 몇 가지를 달성해보자. @A-RA.COM –

설렘의 유효기한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정리와 수납에 대한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말이다. 아직 소용을 다한 것이 아님에도 쓸모의 기대치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 위한 방법이 ‘설렘’이란 말인가. 인생을 얼마나 설레게 살아왔나 곱씹어 보아도 그저그런 날들이 켜켜이 쌓여왔을 뿐이다. 인생을 아예 통째로 휴지통에 넣어야 하나. 공연한 우울감이 든다.

회사를 나온지도 벌써 1년반이 지났다. 개발사 생활 십여년중 전반부는 자신감이 없던 날들이 대부분이었고, 후반부는 상당수가 과중한 업무의 날들이었다. 매일 매일 퇴사하고 싶었던 날들이었다. 2년전에 회사 문을 박차고 나올때는 하고 싶었던 일들이 있었고, 회사가 써버리는 내 시간과 청춘에 대해서 꿈이 있었는데 그 설렘도 어느덧 완전히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낡는다. 나는 다시 일이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지금 회사로 돌아간다면 신입때의 첫마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을까? 내일 회사에 가고 싶어서 잠 못드는 그 날이 다시 올까? 이 감정은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두려움이다. 지나간 시간을 곱씹는데에 설렘은 없을 것이다. 회사는 전남친처럼 그런 존재니까.

– 언제부터 공허함만 남았을까? @A-RA.COM –

조바심

매일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다. 복잡하고 하기 싫은 서류들을 여기저기에 꾸려서 제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단발머리로 잘랐다. 머리를 잘라주는 미용사는 뭐가 그리 궁금한지 자르는내내 질문을 했다. 답하는 건 피곤한 일이었지만 문을 나서는 기분은 어쨌든 홀가분하다.

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하고 더운데 기분이 축축 쳐진다. 힘들다.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닌데, 어른처럼 사는게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헤어지고 만나기

아무리 견고한 관계라 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풍화된다. 시간이 흘렀음을 체감하는 또 하나의 척도는 ‘친구’ 일지도 모르겠다. 낡은 관계들이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인맥으로 채워진다. 낡은 관계들을 미래의 어느 순간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인사하게 될 것이다. “와! 잘 지내는구나.” 그리고, 어색한 차이만큼 지나치게 반가운 태도로 인사하고, 헤어지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멀어진 인생만큼이나 공감대는 없을 것이다. 오늘의 깨달음을 내일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