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장

– 석균이의 이야기-

내가 석균이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는 1989년 봄이었다.
당시 우리 오빠는 대학교 만큼이나 큰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네 살 차이가 나서 도저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었던 우리는
서로에게 참새 시리즈나 얘기 해주며 가끔 얼굴을 대하곤 했었다.

그런 우리 오빠네 학교에는 [교지]라는 책을 1년에 한 귄씩 공짜로 줬다.
예비 중학생이던 나의 짧은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공짜 교지를…
그런데 오빠는 그 책에 관심이 없었는지 새 책 그대로 폐품상자에 던져 버렸다.
호기심에 가득 찬 내가 그 책을 주워 숨겼음은 물론이다.

그 책은 미술 선생님의 그림을 표지로 교화 이름이 제목으로 되어 있는 그런 책이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간간히 사진부 아이들의 사진도 실려 있었고,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한 글들과 시화전에서 전시되었던 시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책의 끝 부분쯤 글짓기 대회에서 차상 정도를 받았던 석균이의 글을
나는 그때서야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 태어나 단 한 번도 흰 종이 연습장을 써 본 일이 없었다.
연습장인데 흰 종이가 아니면 어떠냐는 건 맞는 말이지만,
정말 공(?)적인 문제로 연습장을 써야 할 땐 내가 얼마나 비참해 지는지 모른다.

내게 연습장이라 불리는 종이는 아버지 회사 서류 못 쓰는 것이나,
신문 사이에 끼워져 오는 광고지를 송곳으로 뚫어 쇠고리를 단 것이었다.

그런 어떤 날, 연습장 때문에 자존심을 벅벅 긁어 놓는 일이 생겼다.
가족 소개서에 장래희망 같은 것을 써 내는 일이었다.
그래서 평소 연습장을 잘 주던 창우에게 또 별 수 없이 손을 내밀어야 했다.
그런데 “야, 연습장 좀 가 댕기라”하고 신경질을 뻑뻑 내는 것이다.
그래놓고 반만 갈라 주는 것이다.
맘 같아선 그 널따란 이마에 대빵으로 한 방 먹이고 싶었지만,
그러고 나서 노래방 개업 광고지에 가족 소개를 할 자신이 없어서 속만 부글부글 끓여야 했다.

그 날, 저녁을 먹으며 지나가는 말로 연습장 얘기를 꺼냈지만
어머니의 한결 같으신 말씀은 “딴 집 아는 연습장 안 좋아도 공부만 잘 하더라”였다.

나는 또 실망을 했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연습장 하나 못 살만큼 가난 한 것도 아니었다.
형은 일 주일에 두 번씩 연습장 살 돈을 타가고 있다.
그러면서 “연습장 쓴 두께와 성적은 비례한다”고 말한다.
연습장도 없는 내게 말이다.

아무튼 일찌감치 연습장을 포기해야 했다.
‘다음 시험엔 형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어머니를 놀래켜 드리리라’고 다짐하며 책가방을 쌌다.
그런데 내 책상 아래에 떨어져 있는 건…………. 형의 연습장!!!!
아주 순간적인 생각, 이런 것 두세 권 쯤은 더 있는 형은 아마 모를 거란 생각에
형 것을 잽싸게 가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바로 그때 였다.
빡! 하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뭔가가 떨어졌다. 뭔가는 다름아닌 형의 손이었다.
형의 솥뚜껑 같은 손이 내 머리를 내려 친 것이다.
현기증이 느껴지는 찰나 형의 우레같은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 이 자식이, 지 것도 아닌 거를 들고 가? 이걸 우째 삐꼬?!!! “

집에선 도둑을 키웠다며 학교고 뭐고 다 집어 치우라고 했다.
난 눈 앞이 캄캄했다. 그래 겨우 용서를 빌고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대문을 나설 수 있었다.
그래도 야속한 기분까지는 지울 수 없었다.

” 커서 꼭 연습장 공장 사장되고 말끼다!”

이튿날 아침, 밥상 머리에서 형이 또 연습장 얘길 꺼냈다.

” 어머니, 연습장 한 권 더 사야겠어예. “
” 그래, 마 두 권 사뿌라. 자꾸 살라믄 안 귀찮나? “

나는 젓가락을 슬그머니 놓고 나와 버렸다.
그런 내 뒤로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 자식, 고깟 일로 삐지기는…… “

평소와 달리 형보다 일찍 집을 나와 버렸다.
그 날도 간이 상담서 문제로 아이들에게 잘 보여야 했다.
그래서 수학 시간에는 내 숙제를 창우에게 주고, 나는 그냥 맞았다.

그런데 아뿔싸!
반성문 3장!!!

너무 많이 빌려서 우리반은 안 되겠고, 옆 반까지 가서 어찌 어찌 변통해 오느라
반성문 내는 것도 제 시간에 못내서 쩔쩔매야 했다.
그렇게 하루를 연습장에 매여 지내다 보니 하교길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현관문을 열며 나는 또 한 번 다짐했다.

‘ 그 깟 연습장, 내 아들놈한테는 하루에 한 권씩 사줄끼다. ‘

운동화를 막 벗는데 어머니께서 유난히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셨다.

“인자 오나? 피곤 하제? 씻고 밥 무라.”

나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가방을 끌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 책상위엔……
정말 깨끗하고 하얀 연습장 두 권이 놓여 있었다.

“기분 전환도 하고, 그거 갖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사다 놨다.”

언제 오셨는지 어머니께서 내 옆에 서서 웃고 계셨다.
아까의 그런 피곤함은 다 어디로 갔는지 막 힘이 났다.
어제의 야속함도 이젠 없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나는 그저 이 연습장을 공부로 가득 가득 채울 생각 뿐이었다.
형의 말처럼 연습장 두께와 성적이 비례 할 그 날 생각이….. 』

내가 석균이가 아니어서 실감나게 설명 할 순 없지만 석균이의 글짓기는
대강 그런 내용이었다.

다른 글들에 비해 석균이의 글이 특히나 눈에 띄었던 건
그 때 나도 석균이와 비슷한 처지여서 일 것이다.
어쩌면 당시 국민학생에게 흰 종이 연습장은 조금 과분한 것이었기 때문에
마음 한 구석에는 석균이 글짓기와 같은 그런 결말을 기대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초등학교 졸업반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1989년 봄 얘기지만……

그 일로 오빠는 교지를 다시 버려야 했다.
그러고 나서 한 참 동안 권석균의 [연습장]이라는 글짓기를 잊고 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 짜리 사촌동생 녀석이 글짓기를 해달라는 바람에 생각다 못해
그 글의 내용을 기억해 내어 대충 베껴 쓰게 되었다.

사촌 녀석이 그 걸 숙제로 내고나서 얼마지나지 않아 우리집으로 또 놀러왔다.

” 야,야,야.. 혼자 놀아라 제발..
닌 왜 자꾸 우리집을 친정 드나들듯 하노? “

그런데 녀석의 표정이 꽤나 진지했다.그리곤 무섭게 쏘아본 후 내게 물었다.

” 누나 그 글짓기 뭐보고 베낀거고? “
” 왜? 누가 뭐라 그라드라? 안 베낏는데..? “

난 속으로 뜨끔했다.
그래도 솔직히 내용만 비슷할 뿐 아주 똑같진 않았다.
그것도 나로선 꽤 잘 쓴건데…..

” 샘한테 맞아 죽을 뻔 했단 말이다! “
” 누구? “
” 국어 교생샘, 권석균…… “

– 1994년 겨울. 교지 [고원] 투고. @ARA.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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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ㅁ; <- 웃음과 감동의 물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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