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6년을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났다. 16년전에도 썸타는 국민학교 동창 이야기를 했는데, 마흔을 앞둔 이 시점에도 화젯거리는 변함이 없었다. 네이버 밴드가 동창생들 썸의 한가운데 있었다.

“좋아했던 감정이 있으니까 쓰레기라고 말하긴 싫지만, 정말로 그 앤 쓰레기였어. 그래도 상처받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 열흘이란 짧은 시간동안 설레기도 하고 좋았어. 그나마 열흘만에 그 애가 어떤 앤지 알게돼서 진짜 다행이지 뭐야. “

세 시간 반을 함께 있었고, 얼굴을 모르는 그 남자 이야기를 세 시간동안 했다. 오랜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건 내쪽이었기때문에 그게 서운했다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니, 서버팀 J씨가 커피나 마시러 가자고 했다. 그는 나와 같은 팀에서 일한 시간은 꼬박 2년 반쯤되는 프로그래머였고 서초동 사무실에서는 공개 게임을 두어번 같이 실패하기도 했었다. 최근 그는 아침마다 불평을 했다.

“언제 퇴사할거예요?”
“글쎄.. 계약 끝났으니까 가을런칭이후?”
“빨리 퇴사하세요.”
“근데 며칠째 왜 계속 물어요? 제가 퇴사하기만 기다리는 것처럼.”
“저도 퇴사할거거든요.”

시기상으로 전혀 뜻밖이었다. 아마 내 생각과 비슷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면 그런 기분일것이다. 작은 회사로 오면 낭만과 더 가까워 질 줄 알았는데 현실은 폭풍처럼 몰아닥치는 일과 끝없이 늘어서 있는 작은 목표점들을 위해 인생을 갈아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기분 말이다. 16년을 알고 지낸 친구의 알 수 없는 말들과 2년을 알고 지낸 그의 알 수 없는 결정들이 머릿속에 어지럽게 떠오르고 있다.

“사람을 오래 알고 지낸다고 잘 아는 것은 아닌것 같죠?”
“그럴걸요. 알고 지낸 시간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시간이라는게 부질없으면 뭐가 중요할까요?”
“글쎄…”

커피는 바닥이 났는데, 얼음이 남았다. 막상 미리부터 할 얘기를 다 해버리고나니 더 할 말이 없다.

“그만두면 뭐하고 지낼거예요?”
“취미 그림이나 그리고 쉴려고요. 몇 달은 괜찮을 것 같아서요. 근데.. 이 얘기하면 엄청 깜짝 놀랄줄 알았는데 의외로 덤덤하시네.”
“아니, 완전 깜짝 놀랐는데…”

프로그래머도 그림을 그릴 수는 있지… 휴지통에 빈 커피잔을 집어넣고 걷는다. 정든 동료와 헤어질 거라는 것을 알게 된 것 외에는 달라진 게 없는데 마음이 뒤숭숭해져서 사무실에 와서 짜증을 부린다.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알 수가 없어.

– 나의 엔딩도 곧 찾아오지만. @A-R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