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 복통의 하루. 며칠 전부터 몸이 좋지 않더니, 결국 아침부터 앓아 누웠다. 종일 누워있을 생각이었는데 어머니가 보내신 감이 도착해서 깨어났다. 막상 깨어나 보니 앓기엔 날씨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바깥 공기를 쐴 만큼 컨디션이 좋진 않아서 깨어난 김에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다.

2006년 개봉작 ‘그 해 여름’. 1969년의 시대 배경이 지금과도 다름이 없어 보이는 것이 아이러니지만, 요즘처럼 흉흉한 시절에 딱 알맞는 영화다.

뭐든지 별로 열심히 하지 않는 대학생 석영은 대충하는 일들로 큰 선택을 만난다. 아버지에 대한 염증으로 선택한 학생 운동, 그마저도 열심히 하기 싫고, 미팅도 건성건성한다. 아버지를 피할 겸 따라간 농활에서도 그 이튿날 혼자 서울에 가겠다고 징징댄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연히 서정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기득권의 아들인 석영과 월북자의 딸인 정인은 맺어질 수가 없는 사이다. 석영은 주변의 무수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이끌고 서울로 오게 된다. 이렇듯 생각이 없는 석영이지만, 사랑만큼은 오롯하게 순수하고 맹목적이다. 영화 내내 생각없는 석영을 빛나게 하는 것은 이 무식한 사랑탓이다.

수내리에서 살고 싶다는 부탁을 하는 정인을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서울행 기차를 뛰어내려 돌아와 정인앞에서 더듬거리며 말하는 장면, 아버지의 회유로 취조실에서 마주친 정인을 모른다고 했는데 정인도 석영을 모른다고 화답하자 취조실을 끌려 나가면서 정인을 부서지도록 껴안는 장면은 눈물겹도록 슬프다. 정인이 석영에게 두통약을 사러 보내고 영영 이별을 하는 장면보다 더 슬픈 장면이 취조실 장면은 아닐까….

영화는 그렇게 끝났으나 약에 취해 정신만 몽롱하고, 통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멍한 기분. 영화속의 사랑들이 빛나는 이유는 현실에선 찾기 힘든 탓이다. 누군가를 그렇게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니까.

– 인생을 살아가면서 순수의 시절이 참 짧다는건 슬픈 일인것 같다. @A-RA.COM –